2024. 01. 0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인공지능연구원.

스물은 냉동실 한 구석에 놓고 다닐래

원대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토요일까지 해피베타데이 글들을 마무리하고 한 주를 닫는 글을 일요일에 여유롭게 써내리려고 했죠. 근데 제가 연말에 그렇게 열심히 논 줄은 몰랐어요. 콘서트 다녀온 것들 글 따로 떼면 한 5-6편 나올듯… 그런고로 마무리는 모르겠고 일단 이번주를 닫으려고요.

2024. 01. 01.,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405.

어쩌다보니 열아홉살 이후로 1월 1일 해돋이를 꼭 봤더라고요? 특히 작년에 도쿄에서 봤던 해돋이가 기억에 남습니다. 올해는 못봤어요. 당연함. 자우림 콘서트 끝나고 새벽 2시에 귀가했는데 해돋이는 무슨. 샛별 집에서 꿀잠 잤다네요.

3시에 서울역에서 탈까 3시 반에 광명역에서 탈까 했는데 캐리어 들고 8507 탈 생각하니 아찔해져서 서울역에서 탔습니다. 점심을 못먹어서 기차에서 김밥이나 먹을까 하고 사서 탔는데 생각보다 냄새가 아주 많이 나더라고요??? 몰랐어요 한번만 봐주세요 잉잉.

포항역에서 택시 타고 기숙사로 가는데 기사님 언변이 대단했습니다. 월남전 갔다가 한국 돌아와서 포스코에 취직한 다음 과장 때 벽돌 기업 인수단에 참여하고 이사 상무 찍고 회사 뛰쳐나와서 사업했다가 접고 택시 기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내릴 타이밍을 맞춰서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이런 사람들이 강의를 해야 수업이 늦어지지 않을텐데 싶었습니다.

입사는 22일즈음 했지만 룸메이트와 같이 생활하기 시작한건 1월 1일이 처음이었습니다. 어색해 죽는 줄 알았어요. 기숙사 입사할 때 결핵어쩌구와 함께 MBTI 검사지도 제출해서 E랑 I랑 서로 룸메이트로 붙여주면 좋겠다.

2024. 01. 01., 경북 포항시 청암로 77 기숙사.

회사 맥북을 반납하고 오래간만에 개인 맥북을 꺼냈습니다. 시간이 2023년 8월 5일에 멈춰있더군요. 사실 시간이 멈춰있음을 확인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물질이 사이에 끼어있었는지 입을 앙 다문채로 열리지 않던데요. 채 익지 않은 홍합인줄 알았습니다. 열려고 힘을 줘도 가운데 부분만 둥글게 열리려고 하는게 무척이나 섬뜩했습니다. 화면 나갈까봐 정말 걱정하면서 힘을 팍 줬는데 다행히 깨지진 않았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맥북 상태가 영 좋지 않아서 완전히 초기화해버렸어요. NVRAM 초기화를 하지 않은건 지금 생각났지만 어쩌겠어요. 초기화하고 업데이트까지 먹이려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1월 1일이고 하니 동아리방에서 혼자만의 만찬을 즐기면서 업데이트를 기다렸습니다.

방에 돌아간건 새벽 1시 쯤이었을 것입니다. 술 기운을 빌려 룸메이트에게 처음 말을 걸었어요.”저기요”하고 말을 걸었는데”불은 언제든지 꺼도 괜찮아요”라고 대답이 돌아온 순간 아찔함을 느꼈습니다.

2024. 01. 0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인공지능연구원.

첫 출근을 했습니다. 너무 떨려서 같은 연구실에서 연구참여를 하는 부우에게 같이 출근하자고 부탁해뒀었습니다. 10시 반인가 출근했어요. 다행히 사람들은 많이 없었습니다. 문 앞에서 5번의 쉼호흡을 하긴 했지만요.

2024. 01. 02., 경북 포항시 남구 효성로15번길 9-5. 2024. 01. 02., 경북 포항시 남구 효성로15번길 9-5.

원래는 별 생각 없이 학식을 먹으려 했는데 지렁이와 부우가 맛점하자고 카톡을 줬어요. 냉큼 덥석 오케이하고 어디 갈까 했는데 지렁이 차 있다고 멀리도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차 있고 운전하는 여성… 멋있다.

그래서 폭폭타이를 갔습니다. 맨날 가자고 가자고 이야기는 가끔씩 했는데 성사되지는 않아서 잘 가지는 못했어요.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었는데 너무 맛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똠양꿍을 꼭 먹을거야.

덕분에 맛있는 점심을 먹고 저는 기숙사 앞에 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연구실에 이것저것 놔두어야겠더라고요. 일단은 컵과 티백들을 옮겨두었습니다. 그러고서는 부우가 가져온 귤을 연구실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어요. 지치고 힘들지만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연구실이 3층에 방이 하나 더 있대요. 포기했습니다. 우린 최선을 다했어!!

하루종일 밀어버린 맥북을 세팅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배경화면을 고르는데 시간을 가장 오래 썼습니다. 근 2년간 배경화면이 최연준이었는데 드디어 바꿨어요. 요즘 허광한 미모가 미쳤습니다. 응 진짜로.

2024. 01. 03.,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인공지능연구원.

아침에 화상 미팅이 있었어요. 앞으로 할 일을 정했습니다. 씻고 점심 먹고 출근했는데 부우가 냅다 귤 한봉지 주더니 다 먹으래요. 정말 맛있었지만 다 먹진 못했어요.

할 일이 정해진 만큼 열심히 일했습니다. 리포 세팅하고 15 커밋 정도 푸시했네요. 잘했어 베타!! 토닥토닥.

새해니까 이제는 운동 가야지라는 헛된 목표 잡곤 하잖아요? 그게 나에요 응응. 오래간만에 라켓볼이나 칠까 싶어서 유산소팟에서 라켓볼 칠 사람을 찾았는데 다행히 구해졌습니다. 레몬워터랑 치기로 했어요. 레몬워터가 플러스 저녁 세미나를 하는 날이라서 조금 기다렸고 그 동안 더치페이 정산을 했습니다. 2달치가 밀렸더라고요? 앞으로는 밀리지 말아야지 하면서 50만원을 수금했습니다.

오래간만에 친 라켓볼은 아팠어요. 아니면 레몬워터의 저격 실력이 올랐거나. 유난히 공을 많이 맞았습니다. 아야.

2024. 01. 03.,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체육관.

뭐야 찍은 사진이 없어요. 당연함 너무 바빴음. 10시에 화상 미팅 하고 씻고 점심 먹고 랩 출근해서 숨참고 코딩다이브 했는데 사진 찍을 틈이 있었겠어요?

스트포트가 뜬금없이 남유럽을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고민하다 거절했습니다.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아서.

2024. 01. 04., 경북 포항시 남구 새천년대로 210.

아 러닝도 했어요. 오래간만에 밖에서. 서울 살 때에는 도림천에서 러닝을 했었는데 학교로 돌아오고는 형산강변에서 러닝을 합니다. 일렁이는 강물이 유난히 예뻤는데 뛰느라 바빠서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어요. 돌아오는 길이 맞바람이 심해서 힘들었지만 재밌었습니다.

며칠 전에 와장이랑 부우랑 약속을 했었어요. 삼겹살 사다가 자취방에서 구워먹자고. 그랬는데 와장이 독감에 걸려버렸지 뭡니까. 아쉬운대로 부우랑 둘이서 대충 밖에서 구워먹으려고 했는데 마침 체스가 외식할 사람을 찾길래 셋이서 고기를 먹었습니다. 사진은 없지만 대충 상상해줘요.

그런데 혼자 자취하는데 독감 걸려서 아픈 와장이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서울에서 혼자 자취할 때 아파서 힘들었던 제 모습이 생각나서 아침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카톡을 했었습니다. 저녁 먹으러 가기 전에 사서 가져다줬어요.

2024. 01. 05.,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25-1 1층. 2024. 01. 05.,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25-1 1층.

그러고는 고기 먹고 코노 갔다가 기분이 좋아서 혼자 베라보바를 갔습니다. 아니 사실 키핑해둔 홍화랑을 마시는게 주 목적이었습니다. 올 때마다 클램차우더가 품절이라 아쉬웠는데 이 날은 있더라고요!! 당장 시켰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친구들 더 올 줄 알고 양을 많이 했다면서 남겨도 된다고 걱정해주셨습니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친구 많지 않아요. 음식 남기지 않아요.

술 몇 잔 시켜놓고 블로그 올릴 글과 그림을 작업했습니다. 베라보바에서 찍은 사진을 베라보바에서 작업하고 있으니 느낌이 이상하더군요.

생각해보니 생일파티 때 홍화랑을 단독으로 찍은 사진이 없었어서 온 김에 다시 찍었습니다. 네네 거짓말해서 미안해요. HBD 2023 2편에 있던 홍화랑 사진은 이 날 찍은겁니다.

2024. 01. 06.,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체육관.

토요일에는 별 일 없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이 정말 오래간만이었거든요.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블로그 글 좀 끄적이다가 러닝하고 방에서 영화보면서 술 마셨어요. 룸메가 없는 날이었거든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면서 우는게 습관이 됐어요. 그 복잡하고 정신 나간 영화에 울만한 서사가 도대체 어딨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 안구 건조해져서 눈물 죽죽 나올만큼 상영관에 묶어두고 틀어줘야합니다. 각자를 이해하며 서로에게 다정해야함을 노래하는 영화를 보고 어떻게 안 울 수가 있는거죠?!

2024. 01. 07.,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기숙사.

룸메이트가 아침 일찍 방에 돌아오는 바람에 일찍 잠에서 깼어요. 정확히는 더 자려고 했는데 신경쓰여서 일어났다는 표현이 더 맞겠습니다.

요즘 쌍꺼풀이랑 애교살 있는 부분이 자꾸 빨개지면서 뭐가 나요. 한 2주 넘었습니다. 신경쓰여서 원래 쓰던 섀도우랑 쉐딩을 다 버리고 새로 샀어요. 개봉하고 1년 넘었을 때 바로바로 바꿔줘야하는데 꼭 이렇게 사달이 날 때 까지 버리질 않습니다. 이왕 하는 김에 쓰는 브러시들도 다 빨았어요. 그런데 섀도우도 브러시에 침착이 되나요? 저렇게 모브- 핑크만? 당황스럽네요.

브러시를 빤 김에 방 청소도 했습니다. 쓰레기도 버리고 옷도 정리하고 쓸고 닦았어요. 이상하게 마음이 좋아지더군요. 앞으로 일요일에는 방 청소를 해보려고요.

2024. 01. 07.,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학생회관.

저녁을 먹고 러닝이나 갔다 올까 했는데 그냥 쉬었습니다. 맥주 한 캔 사서 블로그나 끄적거리고 있어요. 혼자 방어를 시켜먹는 사치는 덤이었습니다.

청소도 하고 글도 쓸 수 있는게 참 학기 중 보다는 사람이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스물은 냉동실 한 구석에 놓고 다닐래

오늘 저는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래간만에 마음에 꼭 맞는 대화를 나눈 것 같아서요. 친구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모습이 아직은 어리숙하다고 자꾸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스물다섯입니다. 그런데 다섯살 할래요. 스물은 냉동실 한 구석에 놓고 다닐래요.


권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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